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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MORIAN

-바다에서 온 아이

 

 

 

어딘가에 네가 있을 거란 생각에,

잔잔한 바다는 막연히 아름다워 보였고.

바위에 부딪쳐 바스라 지는 물거품이 어쩐지 네가 보내는 신호 같았다.

 

 

 

 

 

 

창을 통해 정신없이 들이치는 빛을 피해 눈을 뜨니,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어있었다.

‘또또, 늘어져있지!’

코튼 냄새가 폭폭 올라오는 이불을 끌어안아 침대 속으로 기분 좋게 파고들어 나른한 햇빛을 느끼고 있으면 머리 위로 잔소리 폭탄이 쏟아진다. 12시 넘어서 일어나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매번. 들을 때 마다 시끄러워서, 귀찮아서. 그만 듣고 싶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그리워진다. 코를 찌르는 늦은 점심식사 냄새와, 나를 다정하게 들어 올리는 손길이.

여기저기 엉망으로 뻗친 이불을 정리하고 방문을 나서니 텅 빈 식탁이 날 반긴다. 배가 고프긴 한데. 달걀을 깨고, 빵과 베이컨을 구워 접시에 담을 생각만으로도 까딱하기 싫을 만큼 귀찮아져온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물을 꺼내 마신다. 어라, 새로 사러가야겠다.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하긴 마트에 간지 꽤 오래됐다. 한 달 전이었나……. 방금 물을 마셨는데 입이 바싹 탄다. 말리는 흡연욕구에 커튼을 걷어 마당으로 통하는 창을 연다. 눈앞에 펼쳐진 넓디넓은 바다. 저 멀리 또렷하게 보이는 수평선. 쨍쨍하게 떠오른 해가 인사하듯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창틀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저, 바다를. 분명 있겠지. 어딘가에서 나를 그리워하겠지, 나만큼이나 너도. 벼랑 끝에 매달린 우리의 집을. 너도 분명히 그리워하고 있겠지.

나는 어린애처럼 맨발로 마당에 나선다. 발끝을 따사롭게 감싸오는 무성한 잡초들. 돌봐주지 못했구나. 정원의 모습도 어느새 엉망이 되어버렸네. 사락사락,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의자까지 풀들을 밟고 도착한다. 억세지 않고 보드랍게 자라준 풀들이 꼭 유한 당신 같아서 웃음이 샌다. 꼭 이렇게까지 흔적을 남기고 떠났어. 의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그런데 물자마자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바다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다시 또 웃음을 흘린다. 알았어, 안 필게.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필터를 잘근잘근 씹는다.

몸을 간질이는 연약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 푹 눌러쓴 모자를 벗는다. 요란하게 헝클어진 머리가 해방이 된 것처럼 마구 뻗친다. 그런 머리를 정리해주는 다정한 바닷바람 손길에 눈을 감는다. 감은 눈을 비롯하여, 모든 감각이 나와 마주한 바다로 담뿍 물든 기분. 코끝에 가볍게 맴도는 바다 냄새, 몸을 간질이는 바닷바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바다를 사랑하는 당신. 적적하지만 포근한 오후, 나는 가만히 하루를 버틸 힘을 또 충전해간다.

흙이 묻은 발을 털어내 방으로 들어오니 그제야 엉망인 집 안 꼴이 눈에 들어온다. 냉장고는 텅텅 비었지, 집은 엉망이지. 아아, 볕은 좋은데 상황이 안 따라주네. 온 몸 가득 밴 햇빛냄새가 집을 가득 매우려면 어서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서둘러 청소기를 꺼낸다. 청소를 하고, 걸레질을 마치면 차를 끌고 시내로 나가야지.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사면 날이 저물기 시작할 테고, 간단히 주스를 갈아 마시며 해가 수평선 너머로 지는 걸 구경해야겠다. 뜨겁고 빠알간 해를 가득 품은 붉은 바다를 보는 건 언제나 행복하니까.

위이잉-.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에 맞춰 먼지들이 빨려간다. 구석구석 꼼꼼히. 당신이 손길이 닿는 것처럼. 거실도, 내 방도, 그리고 ‘우리’방도. 오늘은 그냥, 계속 꾹 닫아놓은 우리 방을 청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독 당신이 보고 싶어서 그랬나. 문을 여니 바로 보이는 작은 배 장난감. 촛불을 담아두던 바다냄새 나는 장난감이었다. 그때는 무지무지 컸었는데, 이제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폭풍과 파도에 잠긴 벼랑 끝에서 이 배를 타고 나갔을 때. 당신의 늠름하고 멋진 모습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분명 제가 키운 배였는데, 익숙하게 방향키를 조절하는 모습이 당신이 가진 꿈과 너무나 잘 어울려서, 이 바닷물이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고 우리는 고립시켜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고작 다섯 살 때였으니까. 배를 들어 얌전히 수납장 안에 넣어둔다. 바닥에 적힌 당신의 이름을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고.

창문 옆에는 초록색 물통이 떨어져있다. 작고 단단한 물통. 당신은 여기에 나를 담아 이 집으로 데려왔다. 파도에 두둥실 떠오른 나를.

 

 

"승현아! 어린이집 가야지!"

"응!"

승현은 통통한 볼이 한가득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 뒤편부터 바다까지 이어진 솔 길을 후다닥 뛰어내려온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 꼭 아빠가 나가 계신 바다를 향해 인사를 하고 들고 있는 초록색 물통에 그 날의 바닷물을 담아놓는다. 아빠가 모는 배가 오늘도 순탄하게 바다를 누비기를, 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와 땅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쪼그려 앉아 고사리만큼 작은 손을 마구 흔들고 있는데, 넘실넘실 거리는 파도가 승현의 다리를 적셔올 듯 차오른다. 젖으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승현은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모래가 잔뜩 묻은 엉덩이를 털어낸다. 어! 대충 바지를 털어낸 승현이 물을 뜨려 물통을 드는 순간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와 물통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다행이 그것은 바위 부근 옅은 곳에 떨어졌다. 승현은 망설임 없이 양말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제 무릎을 가리는 노오란 어린이집 반바지를 한 번 접어 찰박찰박 바다로 향한다. 물통을 잡으러 몸을 숙이자 장난이라도 걸어오는 듯, 파도가 물통을 더 안으로 데려가 버린다. 히잉……. 잔뜩 울상을 짓고 한 발자국 더 다가간 승현의 눈에 빨간 무언가가 떠오른다.

"어? 금붕어다!"

축 처진 통통한 배를 가진 빨간 금붕어. 저렇게 두면 죽을 텐데. 승현은 재빨리 물통에 금붕어와 바닷물을 한가득 담는다. 승현의 등 뒤로 승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승현은 허둥지둥 양말과 신발을 쥐고 물통을 끌어안아 집으로 올라온다.

"엄마 잠깐만!"

담긴 바닷물을 버리고 수도꼭지를 돌려 신선한 새 물을 통에 가득 채운다. 죽지마, 죽지마아. 입술을 잔뜩 내밀고는 두 손으로 금붕어를 들어올린다.

"죽었ㅇ..윽!"

뒤집어져서 배를 내밀고 있길래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걸었는데, 금붕어는 입에 잔뜩 고인 바닷물을 뱉어 승현의 얼굴을 적신다.

"살았다!"

승현은 젖은 얼굴을 도리도리 털어내고는 예쁜 미소를 방긋 지어 보인다. 큰 눈이 휘어져라 환한 웃음을 보이곤 물통을 들어 엄마가 기다리는 차고로 뛰어간다.

"엄마! 이것 봐 바다에서 금붕어를 찾았어!"

"금붕어?"

"응!"

자리에 앉아 익숙하게 안전벨트를 하고 다리사이에 통을 끼워 손끝으로 금붕어를 콕콕 찌른다. 꼭 사람의 얼굴을 한 것처럼 볼이 있었다.

"자꾸 건들이면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요―"

엄마는 뒷좌석에서 햄샌드위치를 꺼내 주며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한다. 벼랑 위에 위치한 집에서 어린이집이 있는 시내로 나가기 위해!

"응."

샌드위치를 받아든 승현이 한 입 베어 물려는 순간 저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금붕어와 눈이 마주친다. 푸흐, 승현은 배가 고픈 것 같은 금붕어가 귀여워 빵 끝을 작게 잘라준다.

"먹을래?"

빵을 내밀었지만 금붕어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 물 속 깊이 들어간다. 어라라.., 승현은 갸웃거리면서 빵조각을 먹고는 햄을 조금 뜯어낸다.

"그럼 햄? 으앗!"

햄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번개 같은 속도로 물속에서 금붕어가 튀어 올라 빵 사이에 끼여 있는 햄덩어리를 뽑아 먹는다. 물속에 끌고 들어가 자그마한 입술을 움직여 야금야금 뜯어먹는 모습이 어린 승현의 눈에도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제 햄을 뺏겼음에도 불구하고 까르륵 웃어 보인다.

"엄마! 얘 햄을 좋아하나봐!"

"나랑 똑같네?"

"엄마엄마! 얘 이름은 앞으로~ 음, 음. 지용이야!"

"지용?"

"응! 무적키드 카겝맨에 나오는 이름이야!"

"이름이 지용이야?"

"응, 남잔데 무지 예쁘고 귀여워!"

"그래?"

응!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은 승현의 얼굴이 너무나도 귀엽고 해맑아서, 통 안에 지용은 양 볼에 가득 찬 햄을 우물거리면서도 헤에-, 하고 바보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첫 만남부터 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너한테 들켜버려서 이제 와 생각해보니 조금 민망하다. 그때는 여기에 들어갈 만큼 작았고.., 너도 이 통에 크기가 버거울 만큼 작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자라 이렇게 떨어져있구나. 통을 창가에 올려둔다. 창밖으로 아까 제가 앉아있던 의자와 넓은 바다가 보인다. 바다, 우리가 평생을 사랑한 곳.

창 옆에는 망원경과 커다란 선장모자. 그리고 그 옆에 빈자리. 네가 보물로 여기던 아버님의 선장모자, 언젠간 너도 이런 선장모자를 쓰고 꿈을 담은 바다 구석구석을 누비고 싶다고 했는데. 분명 네 모자가 놓여있어야 할 자리가 터엉 비어있다. 손끝으로 그 자리를 쓸어보니 어쩐지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는 그 바다가 그리도 좋았나.

내가 내 능력을 포기하고 너와 같은 인간으로 남아 이 따스한 가정에 함께한지 10년. 그러니까 우리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님은 더 이상 바다에 나가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이사를 하자고 권하셨다. 인간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와, 누구보다 반짝이는 너는 교육을 받아야 했다. 벼랑 끝에 바다를 마주한 집에서 학교까지는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가기 너무 힘들고 멀었다. 나는 너와 함께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그저 나를 좋아해주는 너와 살 수 있다면. 그러나 너는 달랐다. 아버님의 은퇴소식과 함께 너는 식욕을 잃어갔고, 이사소식에는 사흘 밤낮을 울어재꼈다. 너에게 바다가 왜 좋냐고 물을 때 빛나던 눈동자는 그 빛을 잃었고, 쉴 새 없이 떠들던 입은 꾹 다물고 말을 잃었다. 열다섯 살이나 되서 나를 한 번 잃었던 5살의 어느 여름날처럼 엉엉 울어댔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을 걸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스무 살이 되면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로. 그래서 집은 팔지 않고 방학 때면 다시 돌아와 돌봐주었다.

20살. 청춘의 시작에, 너는 아버님의 뒤를 밟아 전문 해양 학교에 들어갔다. 이사 올 때 조건은 어느새 바라져 나는 이 벼랑에 혼자 돌아왔고. 너와 나는 떨어지게 되었다. 속상하긴 했지만, 간간히 내 앞으로 배달되는 편지에 담뿍 느껴지는 사랑과 애정이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함박웃음을 가득 지은 동봉된 네 사진도. 그럼 나는 바닷가에 내려와 물고기들에게 내 소식을 전달하고, 또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

청소를 하는 게 싫어졌다. 귀찮아. 벅벅, 얼굴을 닦으니 손이 잔뜩 축축해졌다. 기분이 좀 나빠서 망원경을 들어올렸다. 저 멀리, 무언가 보일까 싶어서. 최승현이 보일까. 내 세상의 전부인 네가 보일까. 바다 너머로 사라진 네가, 진짜로 보일까 싶어서. 왠지 엉엉 울고싶어졌다. 진짜로, 아무것도 생각 않고 울고 싶었다.

 

날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왜 지금 내 곁에 없는지. 나는 왜 지금 혼자인지.

 

망원경을 들어 창밖을 본다. 뿌옇게 가려진 시야 탓에 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어, 보고 싶은데.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 하던 거라도 마저 끝내고 일찍 잠에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방을 나온다. 다시는 들어가기 싫어. 괜스레 굳게 닫힌 문을 원망하며 정신없이 방청소를 끝내버렸다. 아무런 생각도 못하게. 마트를 가는 건 미뤄야 할 것 같았고, 억지로라도 잠에 들고 싶었다. 땀범벅이 된 몸을 씻어내고 소파에 요를 깔았다. 첫 날, 라면을 먹다가 승현과 함께 잠든 곳. 몸을 구겨 넣어 두꺼운 이불을 끌어 덮으니 내 눈에 바다의 끝이 보인다. 아, 배가 지나간다. 노란 조명을 달고 통통통 지나간다. 고기잡이 배로구나, 내 형제들을 잡아가는 배. 승현아,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저 배를? 아니면 네 배를? 이렇게 시렵고 외로울 줄 알았다면 나는 끝내 너를 말렸을까?

 

승현아, 보고 싶어. 보고 싶어…….

 

협탁에 놓인 흰 통을 들어 두 알의 수면제를 꺼낸다. 까무룩 잠이 들어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면 어딘가에 있을 너를 만날 수 있겠지. 아니, 만나고 싶어. 승현아, 승현아 꼭 찾아와줘.

제가 좋아하는 해질녘 노을과, 그를 품은 뻘건 바다를 뒤로 하고 지용은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옴을 느낀다. 승현과 지용의 사랑이 그득한 벼랑 끝에 놓인 집이 고독의 바다에 잠겨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집이 되는 건 아닐까하는, 지용의 걱정도 쓸려 내려가기를.

빛이 또 제 눈을 찔러온다. 꾹 눈을 감고 빛을 피해보지만, 끈질기게 두 눈을 찔러오는 빛에 눈을 슬쩍 떠본다.

...?

"너 또, 수면제 먹고. 열두시도 넘었어."

"……."

가득 찬 빛 사이에 단단히 나를 안은 두 팔과 함께 내 앞을 떡하니 가로막은 남자. 거짓말처럼, 품에 나를 와락 껴안고 포근하고 천천히 안아주는. 그러니까.

“진짜 최승현이야?”

“응, 나야. 지용아 나 왔어.”

벼랑 끝에서 소원을 빌면 슬픔의 파도들이 소원을 알아차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해준다는 전설이 있었어. 근데 그거, 전설 아닌가봐. 내가 엉엉 울어서, 내 형제들이 너에게 전했나봐. 내가 이렇게 가슴 시리게 널 보고 싶어 했다고.

“너, 너 진짜.”

“울어? 미안해. 이번 항해가 좀 길었어. 중간에 폭풍도 만났고.. 연락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많이 걱정했지. 지용아, 얼굴 좀 봐봐. 응? 보고 싶었어. 나 좀 봐줘. 어?”

잔뜩 눈물을 흘리며 어미새를 찾는 아기새처럼 제 품을 파고드는 지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승현은 행복한 웃음을 흘린다.

원래는 이주간의 짧은 항해였다. 출발하기 전에도 이주 뒤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귀국선에서 폭풍을 대면하고 배가 멈춰 망망대해에서 일주일을 소비했다. 겨우겨우 고국으로 돌아왔을 땐, 한 달이나 지나있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선장의 일 탓에, 지용은 외로움을 많이 탔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제가 돌아오면 항상 병을 앓았다. 와중에 말도 없이 더 늦어버리고, 연락마저 두절되었으니 애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지용아, 나 봐봐. 응, 옳지. 나 잘 돌아왔잖아. 이제 그만 울어.”

“말미잘, 오징어, 문어보다 못생긴 새끼야 진짜.”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또 다시 흐엉, 하고 울어버리는 이런 사랑스런 물고기를 두고 내가 어딜 다녀왔는가. 내 원대한 꿈과 이상은 오로지 다 널 향해 있는데, 이렇게 네가 슬퍼하면…….

“지용아, 나 이제 바다 안 나갈 거야. 그러니까 뚝 해.”

응? 축축하게 젖은 눈을 가득 뜨며 이제야 눈을 맞추는 녀석을 더 꼭 끌어안았다.

“폭풍 속에서, 네 어머님. 뵙고 왔어. 사실 나 진짜 죽을 뻔 했을 거야. 어머님 아니었으면, 지난 십 수 년간 당신 자식 보고 싶은 마음 꾹꾹 누르고 눌러왔는데 나 죽을뻔한거 보시고 달려오셨대. 다시는 안 나타나겠다고 약속해놓고 와서 미안하다고 하셨어. 근데, 딱 너 생각 들더라. 여기서 내가 죽으면 난 정말로, 널 다시는 못 보잖아. 미안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어. 지용아, 내 지용아. 우리 이 벼랑 끝에서, 우리 둘이 불안하지 않게 행복하게 살자. 사랑한다.”

 

지용아, 내가 데려온 사랑아. 우리의 보금자리인 벼랑 위에서, 더 이상 네 걱정 안 시킬게. 울지 말고. 우리 영원히, 네가 포기해 온 만큼, 그리고 내가 포기한 만큼. 그보다 더 행복하게 살자. 영원한 나의 물고기, 신비의 힘을 가진 내 사랑. 너와 함께 할 때마다 기분은 좋고, 자꾸자꾸 보고 싶어. 사랑해, 내 꿈을 가득 가진 바다에서 온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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